
“웃음 뒤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당신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디스크립션: 예상과 전혀 달랐던 한 편의 대화
<악마와의 토크쇼>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누군가는 기괴한 판타지를, 누군가는 예능 포맷의 실험적인 연출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이렇게 말하게 될 겁니다. “이 영화는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악마와 인간, 이 둘의 대화 속에서 웃고 떠들다가 어느 순간부터 정작 내가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관객’이 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 감정이 이 영화의 시작점이자 끝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악마는 늘 그랬듯,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영화 속 악마는 기괴하지 않습니다. 상상 속의 붉은 뿔이나 날카로운 이빨도, 불타는 지옥도 없습니다. 그는 차분하고 세련됐으며, 말을 아주 조리 있게 잘합니다. 어떻게 보면 뉴스에 나오는 경제 전문가처럼 보이기도 하고, 모두의 공감을 끌어내는 팟캐스트 진행자 같기도 합니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이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나는 단지, 사람들이 원한 걸 줬을 뿐이야.” 이 한 문장에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거의 모든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늘 ‘악은 어딘가 밖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해요. “악은 너희가 만든 거야. 그리고 지금도 만들고 있어.” 악마는 유혹하지 않습니다. 그저 옵션을 줍니다. 선택은 항상 ‘우리’의 몫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편하고 빠르고, 확실한 것을 원할수록 악마는 더 쉽게 웃을 수 있습니다.
왜 웃긴데 불편한 토크쇼였을까?
영화는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방청객이 있고, 사회자가 있고, 무대가 있고, 박수가 있습니다. 초반엔 정말 예능처럼 가볍게 흘러갑니다. 악마는 재치 있게 농담을 던지고, 사회자는 그걸 받아치며 웃습니다. 관객들도 낄낄 웃고, 장면 전환도 경쾌합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 ‘농담’들이 자꾸만 마음에 걸립니다.
“사람들은 진실을 원한다고 하면서, 결국엔 자기편이 말하는 걸 믿는다.”
“정의? 정의는 언제나 유행을 타. 필요할 때만 쓰이는 장식품이지.”
“요즘 사람들은 자유보다 설명서를 더 원해. 선택지는 많지만 정답은 하나여야 하거든.”
영화가 계속될수록 이런 대사들이 그냥 대사로 들리지 않습니다. 영화가 ‘우리’ 이야기를 너무 정확히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박수와 웃음 속에 “그게 나인데…” 하는 감정이 떠오릅니다. 불편하다는 건, 누군가 내 진짜 모습을 건드렸다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웃게 만들고, 동시에 그 웃음을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이 영화는 결국,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제한된 공간, 거의 변하지 않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지만 그 안에서 표현되는 감정의 깊이는 꽤 넓습니다. 화려하고 밝은 조명으로 시작했던 무대는 악마의 말이 조금씩 깊어질수록 조명이 낮아지고, 카메라는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관객석의 표정도 변하죠. 처음엔 신난 얼굴들이었지만, 점점 웃음이 줄고 시선이 흔들립니다. 사회자의 반응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엔 여유롭던 진행이 점점 무겁고 조심스러워집니다. 그 변화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걸 느끼는 순간, 우리는 영화 속의 인물이 아니라 이 사회라는 커다란 토크쇼의 한 관객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악마보다 무서운 건, ‘익숙함’입니다.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악마가 사악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너무 논리적이고 너무 매력적입니다. 악마보다 더 무서운 건 관객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별 의심 없이 박수를 칩니다. 웃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 장면이 낯설지 않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픽션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의 아주 정직한 반영이 됩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우리는 그 변화에 적응하느라 너무 바빴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데’ 싶은 순간에도 그냥 흘려보냈죠. 그 익숙함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눈을 감고, 조금씩 타협하고, 조금씩 양심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흔한 영화가 아닙니다. 보는 동안은 재미있고 흥미롭지만, 끝나고 나면 말수가 줄어들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그건 불편해서가 아니라, 정확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악마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 안의 선택 속에 있고, 일상의 판단 안에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외면했던 ‘작은 순간들’ 속에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묻습니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묻고,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줍니다. 그리고 말없이 퇴장합니다. 영화는 끝나지만, 그 질문은 관객의 마음속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있나요?”
“당신은 오늘도 누군가에게 박수를 치고 있진 않나요?”
“그 박수, 정말 진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