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보고 나서 머릿속이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사운드가 거의 없다시피 조용한데, 그 조용함이 저한테는 오히려 너무 무겁고 무서웠습니다. 보는 내내 긴장을 놓지 못했는데요. 딱히 무섭게 생긴 괴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소리 지르거나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도 없는데, 계속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시작은 평범합니다. 그래서 더 무서웠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평범한 거리 풍경이 나옵니다.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움직이고요. 대사도 많지 않고, 뭔가 평화롭고 잔잔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뭔가 떨어지고, 모두가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당황은 곧 공포로 바뀝니다. 그 이유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아서 더 불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소리’라는 게 문제라는 걸 아무도 모르는 상황. 그래서 실수들이 일어나고, 그게 곧 생명과 연결됩니다. 그때부터 관객인 저도 영화 속 인물들과 똑같은 입장이 됩니다. 뭘 하면 안 되는지 모른 채 조심조심하게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소리 하나에 죽음이 연결될 수 있다는 공포는 현실에서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건 괴물이 아닙니다.
정말 일상적인 소리입니다. 컵 떨어지는 소리, 전화기 진동 소리, 고양이 울음소리입니다. 그게 ‘죽음의 신호’가 되는 설정인데,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극장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다들 팝콘 먹는 걸 멈추고, 콜라 마시는 타이밍도 조심하고, 기침 한 번 나오는 것도 민망할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이 영화는 관객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루피타 뇽의 연기는 대사 없이도 완벽했습니다
이번 편의 주인공은 ‘샘’이라는 인물입니다. 배우 루피타 뇽이 연기했는데요, 말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눈빛, 표정, 작은 몸짓 하나에 그 공포와 슬픔, 책임감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고양이를 안고 도망치는 장면에서는 제가 같이 도망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발 소리 나지 마…”라고 속으로 되뇌면서요. 대사가 없어도 감정을 전할 수 있다는 걸 이 영화가, 이 배우가 증명했습니다. 시리즈를 안 봐도 괜찮습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은 프리퀄입니다. 시리즈의 시작을 보여주는 이야기라서 1편이나 2편을 안 본 사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를 먼저 보고 그 이후 편들을 이어서 본다면 ‘왜 그렇게까지 조심하며 살아야 했는지’ 그 배경이 더 강하게 와닿을 수도 있습니다. 전작을 본 사람에게는 연결되는 포인트들이 있어서 몰입감이 더해지는 건 확실하지만, 처음 보는 분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구성입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 첫째 날
결말은 조용합니다. 그런데 잊히지 않습니다. 영화는 시끄럽게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도 말 한마디 없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조용함 속에서 ‘이제 진짜 이 세계가 시작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불안하고, 서늘하고, 마음이 이상하게 먹먹해졌습니다. 저는 그 한 장면 때문에 엔딩 크레딧이 올란도 한동안 자리를 못 일어났습니다. 생각보다 감정의 여운이 깊게 남았습니다. 정리하자면 소리 하나에 모든 게 결정되는 영화입니다. 배우의 감정 전달력이 정말 뛰어났습니다. 조용한 분위기가 관객까지 조용하게 만듭니다. 시리즈를 몰라도 무리 없이 이해됩니다. 끝나고 나면 오히려 생각이 더 많아집니다. 제목 그대로 콰이어트 플레이스 속 조용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조심해야 할까, 조용히 해야만 하는 것 외에 해결방법은 없는 것일까 누구를 탓할 문제일까? 그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습니다.